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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칼럼

특허권의 진정한 얼굴: 내 발명을 지키는 방패일까요, 상대를 베는 칼일까요?

이동근 대표 변리사 2026. 3. 20. 17:47

1. 흔한 오해, "특허를 받았으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이 기술은 내가 특허를 받았으니 이제 나만 마음대로 쓸 수 있다"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특허를 곧 나를 지켜주는 무적의 '방패', 즉 '독점권(Monopoly Right)'으로 오해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타건감이 아주 훌륭한 혁신적인 '기계식 키보드'를 발명해서 특허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경쟁자가 제 키보드 구조에 블루투스 모듈을 달아 선 없이 연결되는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로 새로운 특허를 받았습니다. 소비자는 당연히 선이 없어 편리한 무선 키보드만 구매했고, 결국 원조 발명가인 저는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특허가 내 기술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무적의 '방패'라면, 먼저 혁신을 이룬 제가 망해버리는 이 상황은 너무나 억울하고 불합리할 것입니다.

 

이런 억울한 상황을 방지하고 합리적인 룰을 만들기 위해, 특허의 진짜 본질은 '내가 쓸 권리'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내 발명을 마음대로 실시하고 타인의 공격을 막아내는 권리가 '방패(독점권)'라면, 타인의 무단 사용을 금지하고 책임을 묻는 권리는 '칼(배타권, Right to Exclude)'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특허법이 발명가에게 주는 것은 방패가 아니라 철저하게 '칼'입니다.

 

과거 제가 대기업에서 특허를 어떻게 활용할지 전략을 수립하던 입장에서, 특허를 단순히 나를 방어하는 '방패'로만 여기는 기업과 시장 경쟁자를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칼'로 정확히 이해하는 기업은 비즈니스 성패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왜 특허권이 방패가 아닌 칼일 수밖에 없는지, 그 법리적인 이유를 찬찬히 따져보겠습니다.

2. 무체재산인 발명, 애초에 '방패'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물건(유체물)은 물리적 지배가 가능하므로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내 스마트폰은 내가 쥐고 있는 한 나만 쓸 수 있고, 타인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즉, 소유권이라는 방패는 물리적 독점과 표리관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형태가 없는 아이디어인 '발명'은 다릅니다. 누군가 내 기술을 보고 머릿속에 담아가는 순간 물리적인 독점은 불가능해집니다. 갈릴레이가 1594년 양수기 특허를 청원하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만들었는데 모두의 공유재산이 되는 것은 견딜 수 없다"라고 호소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즉, 발명의 본질상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남은 못 쓰게 물리적으로 막는' 그런 전지전능한 방패(독점권)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국 특허제도에서 말하는 '독점'이란, 국가가 내 손에 쥐여준 '칼(법에 의한 배타)'을 휘둘러 타인의 경쟁을 배제함으로써 시장을 정리하고 얻어지는 '반사적 결과'일 뿐입니다.

 

즉, 특허권은 배타라는 칼을 본질로 하되, 그 결과물로서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구조인 것입니다.

3. 명문으로 '베는 칼'임을 천명한 미국 특허법과 Herman 판례

이러한 특허권의 성질은 미국 특허법(U.S. Patent Law)과 그에 대한 오랜 판례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한국 특허법 제94조가 "특허발명을 실시할 권리를 독점한다"고 표현하여 독점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미국은 특허권이 철저하게 소극적인 권리인 '배타권'임을 명문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특허법 제154조는 특허권자가 가지는 권리를 "타인이 발명을 제조, 사용, 판매 청약, 판매 또는 수입하는 것을 배제할 권리(the right to exclude others from...)"라고 정확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 법제상 특허권은 권리자에게 '발명을 스스로 실시할 권리(방패)'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이 내 발명을 쓰지 못하게 베어버릴 칼(금지권)'만을 부여한다는 점을 뚜렷하게 밝힌 것입니다.

 

미국 법원은 일찍부터 이 원칙을 확고히 해왔습니다. 리딩 케이스인 Herman v. Youngstown Car Mfg. Co. (1911) 판례에서 법원은 이렇게 명시했습니다.

"특허증의 수여는 특허권자에게 발명을 제조, 사용, 판매할 적극적인 권리(방패)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 특허의 본질은 오직 타인이 그 발명을 실시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칼)'에 있다."

 

발명가가 자신의 발명을 실시할 권리는 특허가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진 자유일 뿐이며, 특허법은 오직 타인의 침해를 베어버릴 강력한 무기만을 제공한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4. 한국 특허법의 '이용관계'가 증명하는 '칼'의 성질

한국 특허법 제94조의 문언 때문에 특허를 '방패'로 오해하기 쉽지만, 우리 법 체계 역시 그 본질이 '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서론에서 언급한 '기계식 키보드'와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의 억울한 사례를 해결해 주는 '이용관계(제98조)' 및 '통상실시권 허락의 심판(제138조)' 규정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를 발명한 후행 특허권자는 원조 '기계식 키보드'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는 자신의 특허를 쓸 수 없습니다(제98조). 즉, 특허를 받았음에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방패가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원조 특허권자 역시 상대의 허락 없이는 무단으로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를 만들어 팔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실시를 막는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죠.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제138조입니다. 서로 강제적으로 실시권을 허락받게(Cross-license) 하여, 원조 키보드 발명가도 블루투스를 결합한 발명가도 정당한 대가를 받고 기술을 상호 발전시킬 수 있게 합니다.

 

만약 특허가 '나 혼자 마음대로 쓰는 독점권(방패)'이라면 서로의 특허가 얽혔을 때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특허를 '남의 실시를 금지하는 배타권(칼)'으로 이해하면 명쾌해집니다. 비록 내 발명을 내 마음대로 실시할 권리(방패)는 선행 특허나 타인의 개량 특허에 의해 제한받을지라도, 내 기술을 허락 없이 쓴 상대방을 멈춰 세울 권리(칼)는 여전히 온전히 살아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맺음말: 규제 산업에서 더욱 뚜렷해지는 '배타권'의 진가

특허가 '내가 쓰는 권리(방패)'가 아니라 '남을 막는 권리(칼)'라는 점은 일반 대중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는 특히 의약품처럼 타 법률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산업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제가 훌륭한 신약을 발명해서 특허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특허가 있다고 해서 당장 약을 팔 수(실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건당국의 까다로운 임상과 허가 절차를 통과해야만 하죠. 만약 특허가 '내가 실시할 권리(독점권)'라면, 허가를 받느라 실시조차 못 한 기간 동안에는 특허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그 사이 내 기술을 훔쳐 써도 내 독점권이 잠시 묶여 있으니 침해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모순이 생깁니다.

 

하지만 특허권의 본질이 '타인의 실시를 막는 칼(배타권)'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제가 아직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약을 팔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 사이 남이 내 기술을 몰래 쓰는 것은 여전히 베어버릴(침해를 물을) 수 있습니다. 내 칼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특허를 배타권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특허법 제94조가 겉보기엔 독점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과 실제 운용은 완벽하게 배타권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허는 나를 둥글게 감싸는 안전한 방패가 아닙니다. 시장의 무단 도용자들을 베어버리고 나의 구역을 적극적으로 지켜내는, 아주 날카로운 '칼'입니다.

 

놀랍게도 현업에서 활동하는 적지 않은 전문가들조차 특허권을 단순한 '독점권(방패)'으로 오해하여, 고객들에게 수동적이고 한계가 뚜렷한 IP(지식재산권) 전략을 제안하곤 합니다. 하지만 방패만 들어서는 치열한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 특허법의 표면적인 문언을 넘어 그 본질인 '배타권'의 성질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들의 IP 최전선에서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자를 견제하는 공격적인 특허 전략을 수립해 왔습니다. 고객님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탄생한 소중한 기술, 이제는 그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가장 예리한 무기로 벼려낼 수 있는 진짜 전문가와 함께 제대로 지켜내시기를 바랍니다.

 

이동근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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